영화 '만약에 우리' (연출과 기법, 시대적상황을 중심으로)
(약간의 스포는 있음)
0. 한국 로맨스영화는 클래식 이후로 뭐 특출난 게 없다고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에겐 기대외로 너무나 즐겁게 본 영화였다. 영화보는내내 잔물결같은 감성이 있었다는 반응이 있었고 눈물이 똑똑 흘러내렸다는 반응 두 가지로 갈리는 듯하다.
1. 영화의 독특한 연출 장치는 색채의 반전이다. 일반적으로 과거 회상 장면을 흑백으로 현재를 컬러로 묘사하는 것과는 상이하다. 두 주인공이 함께했던 그 때는 세상이 총천연색으로 빛났지만, 헤어진 후 각자 살아가는 현재를 무채색으로 나타낸다. 좀 유치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강력하면서 심플한 연출이다. 엔딩부로의 전개까지도.
또한 흑백화면은 관객의 시선을 불산시키는 배경적 잡음을 소거함으로써 인물의 눈빛, 떨림, 침묵의 표현을 극대화시킨다.
이또한 서로가 곁에 있었기에 세상은 온전한 색을 띠고 있었다는 로맨틱한 역설이다.
2. 이 영화의 플롯은 두 남녀의 대화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은호와 정원이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주고받는 말들은 마치 현실의 애드리브를 보는듯한 티키타카를 보여준다. 난 이 부분이 너무 현실적이었다. 서로의 말에 바로바로 반응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들은 마치 정말 한 공간에서 싹틔우는 청춘 남녀의 케미를 보는 듯해서. 특히 구교환과 문가영의 연기력에 대해 놀랐다.
로맨스영화는 보통 배우의 극중 케릭터로의 전이가 쉽지않은 장르인데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마치 구교환 문가영 본인들의 20대 모습들인 것처럼.
감독의 오더가 좋았다. "대사를 주고받을 때 음성이 겹쳐도 신경쓰지 말고 감정에 집중하라" 이러한 연출적 허용 덕에 말 끊기지 않는 속도감 있는 대화가 가능해졌고 극 중 구도받는 유머와 설렘, 때론 욱하는 말다툼까지도 자연스러웠다.
3. 2000년대 서울의 시대상과 복고 감성
영화의 배경은 리먼브라더스 이후 즉 2008년~으로 추측된다. 당시 88만원 세대,N포세대 등의 신조어가 나올만큼 팍팍했던 현30대후반~40대의 2030 시절
생활고, 취업난, 반지하, 싸이월드, 디카, mp3플레이서, 피쳐폰
이런 아이템들을 배치한 것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지난 시간의 흔적들'을 나타내기도..
현재의 시대상도 잘 녹였다. 과거 정원이 한강대교앞에서 내 이름으로 된 집을 갖고 싶다는 소망을 외치자 옆에 은호의 친구역은 왜 이렇게 소박하냐고 묻는다.(2010년대초반) 그랬던 그들이 은호의 아버지가 결혼애기를 꺼내자 요새 남자가 집도 없이 어떻게 결혼하냐고 반문하고(2010년대후반) 2026년의 시점에서 봤을 때 어찌보면 요즘의 2030에게도 감독이 공감하는 장치로 넣은듯한 대사이지싶다.
4. 내용적 측면에서도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익명성과 냉혹함 속에서 싹이 튼 두 남녀의 애정은 그들이 가장 원했던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균열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 균열이 (DC유니버스이 멀티버스보다 더 이전에 존재하는) 필연적지점이었다면 결국 그 둘은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킨 것이다.
What if?라는 마법의 단어는 현재의 불만족을 회피하기 위해 과거의 선택을 수정해보는 심리적 방어 기제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단어가 가진 마법의 유혹이 결국은 현재를 갉아먹는 저주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극중 '지금'의 정원이 계속해서 'what if?'를 부정하는 것도 만약은 없다는 냉정한 진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삶이 시작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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